사람의 피부세포를 다시 심장세포나 신경세포로 바꾸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반면 식물줄기세포는 훨씬 간단한 방식으로 스스로 초기화된다. 과학자들이 사람에게서 딱 하나 알아낸 방법은, 특별한 유전자 4개를 세포 안에 억지로 집어넣는 것 뿐이다. 이 방법을 처음 발견한 일본 과학자 야마나카 신야는 이 공로로 2012년 노벨상을 받았다.
그런데 식물은 다르다. 잎 한 장을 잘라서 적당한 조건에 놓아두기만 하면, 그 잎 세포는 스스로 알아서 초기화된다. 마치 리셋 버튼을 누른 것처럼, 뿌리도 내고 줄기도 세우고 새잎도 틔운다. 사람처럼 유전자를 억지로 넣어줄 필요가 전혀 없다. 세포 안에 원래 그런 능력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나는 30년 가까이 현미경으로 이 장면을 지켜봐 왔다. 상처 난 식물 조직 위로 정체불명의 세포 덩어리가 뭉게뭉게 자라난다. 이걸 캘러스(callus)라고 부른다. 이 캘러스는 어떤 조건에서는 뿌리가 되고, 어떤 조건에서는 싹이 된다.
대체 식물 세포 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사람과 식물, 무엇이 다른가
사람의 몸은 하나의 수정란에서 시작한다. 이 수정란은 뭐든지 될 수 있는 세포다. 그런데 세포가 나뉘고 나뉘어서 눈이 되고, 심장이 되고, 피부가 되면 — 그 순간부터는 되돌릴 수 없다. 한번 피부세포가 된 세포는 평생 피부세포로 산다.
과학자들은 이걸 “바이스만 장벽”이라고 부른다. 정자와 난자를 만드는 생식세포와, 눈·심장·피부를 만드는 일반 체세포 사이에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을 처음 제안한 사람은 19세기 과학자 아우구스트 바이스만인데, 이 벽은 동물에게는 있지만 식물에게는 없다고 알려져 왔다.
그런데 식물은 왜 다를까? 정답은 간단하다. 식물은 애초에 이 벽을 세울 이유가 없었다. 동물은 위험하면 도망가면 그만이지만, 식물은 한자리에 뿌리박고 평생을 산다. 초식동물에게 잎을 뜯기든, 태풍에 가지가 부러지든, 그 자리에서 버티고 다시 살아나야 한다. 그러려면 몸의 어느 부분이든 “원점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능력”을 세포 하나하나가 품고 있는 편이 훨씬 유리했을 것이다.
물론 최근 연구는 이 이야기를 좀 더 정교하게 다듬고 있다. 최근 발표된 아라비돕시스 연구에 따르면, 식물의 생식세포 중 일부는 실제로 늦게 갈라져 나오지만(식물답게), 일부는 이미 일찍부터 다른 세포들과 분리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즉 식물도 부분적으로는 동물과 비슷한 “이른 분리” 방식을 함께 갖고 있다는 뜻이다. 식물이 무조건 자유롭다기보다, 두 가지 전략을 함께 쓰는 훨씬 더 영리한 시스템이라고 보는 게 최근 시각이다.
캘러스, 세포가 다시 태어나는 순간
이제 진짜 궁금한 부분. 식물 세포는 대체 “어떻게” 원점으로 되돌아갈까?
상처 난 식물 조직을 적당한 배지 위에 올려두면, 그 자리에서 정체불명의 세포 덩어리가 자라나기 시작한다. 이걸 캘러스(callus)라고 부른다. 아직 잎도, 뿌리도, 줄기도 아닌 — 말 그대로 “백지상태”의 세포 뭉치다.
이 백지상태의 세포가 다음에 무엇이 될지는 딱 두 가지 호르몬의 비율이 결정한다.
- 옥신(auxin)이 많으면 → 뿌리가 만들어진다
- 사이토카이닌(cytokinin)이 많으면 → 싹(줄기와 잎)이 만들어진다
- 두 호르몬이 균형을 이루면 → 캘러스 상태 그대로 유지된다
이 두 호르몬의 비율을 조절해서 원하는 방향으로 재생을 유도하는 2단계 배양법이 실제 실험실에서 널리 쓰인다. 먼저 옥신이 풍부한 배지에서 뿌리 쪽 성질을 가진 다능성 캘러스를 만들고, 그다음 사이토카이닌이 풍부한 배지로 옮겨서 새로운 싹눈(신초분열조직)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그럼 세포 안에서는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최근 연구는 그 답을 유전자 수준까지 파고들었다. WOX5라는 유전자가 핵심 열쇠 중 하나로 밝혀졌는데, 이 유전자는 원래 뿌리 끝에서 줄기세포를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유전자가 시험관 속에서 배양되는 체세포를 “배아 상태”로 되돌리는 데에도 관여한다는 사실이 최근 확인됐다. 쉽게 말해, 뿌리 끝에서 원래 줄기세포를 지키던 유전자가 다 자란 체세포에서도 다시 켜지면서 “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라고 명령을 내리는 셈이다.
흥미로운 건 이 과정이 단순히 “켜짐/꺼짐”이 아니라는 점이다. WOX13이라는 또 다른 유전자는 정반대로, 캘러스가 다시 싹으로 자라나는 걸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즉 캘러스 안에서도 “다시 태어나자”는 신호와 “여기서 멈추자”는 신호가 세포마다 팽팽하게 맞서고 있고, 이 줄다리기의 결과에 따라 어떤 세포는 새싹이 되고 어떤 세포는 그냥 캘러스로 남는다.

이 능력은 어디에 쓰일까
캘러스를 원하는 대로 조절할 수 있다는 건, 단순히 신기한 현상에 그치지 않는다. 실제로 우리 생활 곳곳에서 이 원리가 쓰이고 있다.
- 우량 품종 대량 증식: 병에 강하거나 수확량이 많은 우수한 품종 하나를 찾으면, 조직배양으로 똑같은 개체를 짧은 시간 안에 대량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씨앗을 심어 기다리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다.
- 희귀식물·멸종위기 식물 보전: 개체 수가 몇 안 남은 식물도, 세포 몇 개만 살아있으면 조직배양을 통해 개체 수를 늘릴 수 있다.
- 식물세포 배양 성분: 최근 화장품이나 건강기능식품에 쓰이는 “식물줄기세포 배양 성분”이라는 문구도 결국 이 원리에서 나온다. 식물 전체를 재배하지 않고도, 캘러스 상태의 세포를 배양해서 원하는 물질만 뽑아내는 것이다.
말하자면, 식물이 원래 갖고 있던 “리셋 능력”을 인간이 살짝 빌려 쓰고 있는 셈이다.
마무리 — 현미경 앞에서 배운 것
돌이켜보면 나는 지난 30년 가까이 이 “리셋의 순간”을 셀 수 없이 지켜봐 왔다. 상처 난 조직 위에 뿌옇게 자라나는 캘러스를 처음 봤을 때의 낯선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저게 뿌리가 될지, 싹이 될지 — 그 갈림길이 오로지 호르몬 몇 방울의 비율로 결정된다는 사실을 눈으로 직접 확인했을 때는, 교과서 속 지식이 손끝의 감각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사람은 한번 정해진 세포의 운명을 되돌리려면 노벨상급 발견이 필요하다. 그런데 식물은 잎 한 장, 줄기 한 마디 속에 그 능력을 처음부터 품고 있다. 화려하게 도망치거나 맞서 싸울 수 없는 존재가, 대신 선택한 생존 전략이다.
어쩌면 우리가 식물에게서 배워야 할 건 대단한 기술이 아니라, 이런 태도일지도 모른다. 끝난 것 같아 보이는 자리에서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방법은 늘 남아 있다는 것.
참고 문헌
- Yakovleva D. et al., WOX5 reprograms plant somatic cells via auxin-mediated pathways, BMC Plant Biology, 2025
- Sugimoto K. et al., WUSCHEL-RELATED HOMEOBOX 13 suppresses de novo shoot regeneration, Science Advances
- Weismann barrier 관련 고전 이론 및 2026년 아라비돕시스 계통추적 연구, ScienceDirect
- Liu L. et al., Comparisons between Plant and Animal Stem Cells Regarding Regeneration Potential and Application, IJMS,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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