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을 끊자 식물이 살아났다 — 조직배양실에서 발견한 광합성의 힘

조직배양실에서 가장 무서운 건 바이러스도, 벌레도 아니다. 곰팡이와 세균이다. 배지 하나가 오염되면 몇 주간 정성 들여 키운 배양체가 하루 만에 못 쓰게 된다.

오래전, 나는 매번 이 오염과 싸우고 있었다. 배지에 넣는 설탕(자당)의 양을 줄이면 오염이 줄어든다는 건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그럼 얼마나 줄여야 싹이 제대로 나올까”는 순전히 시행착오의 영역이었다. 설탕을 조금씩 줄여가며 실험을 반복하던 어느 날, 설탕을 아예 넣지 않은 배지에서도 신초(새싹)가 멀쩡히 자라나는 걸 발견했다.

조직배양되고 있는 감자 단엽의 모습

이상했다. 캘러스를 유도할 때는 설탕이 없으면 세포 덩어리가 제대로 자라지도 못했는데, 잎 절편에서 싹을 틔우는 단계에서는 설탕이 있든 없든 큰 차이가 없었다.

왜 캘러스는 설탕이 없으면 멈추는데, 잎에서 나온 신초는 설탕 없이도 잘 자랄까?

캘러스는 왜 당이 필요한가

캘러스는 상처 난 조직 위에서 자라나는 미분화 세포 덩어리다. 아직 잎도 뿌리도 아니고, 엽록소도 제대로 발달하지 않은 상태다. 쉽게 말해 스스로 밥을 지어 먹을 부엌(광합성 기관)이 아직 마련되지 않은 세포다.

이런 세포는 에너지원을 외부에서 공급받아야 한다. 그게 배지에 넣는 자당(설탕)이다. 설탕이 없으면 캘러스는 성장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지 못해 제대로 자라지 못하거나 죽는다. 그래서 조직배양 초기 단계에서는 배지에 당을 넣는 게 오랫동안 당연한 공식이었다.

문제는 이 설탕이 캘러스에게만 좋은 먹이가 아니라는 데 있다. 곰팡이와 세균에게도 최고의 먹이다. 설탕이 든 배지는 미생물이 번식하기에도 완벽한 환경이 되고, 그래서 오염이 그만큼 쉽게 일어난다.

잎 절편이 다른 이유 — 광합성이라는 변수

그런데 잎 절편은 상황이 다르다. 잎은 이미 엽록소를 갖춘 조직이다. 배양 용기 안이라 해도 빛만 충분히 받으면, 잎은 스스로 광합성을 해서 포도당을 만들어낼 수 있다. 즉 이미 자기 부엌을 갖추고 밥을 지어 먹을 수 있는 조직인 셈이다. 그래서 배지에 설탕을 넣지 않아도 신초 유도가 가능했던 것이다.

이 발견을 하고 한참 뒤에야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이건 내 개인적인 우연한 발견이 아니라, 이미 학계에 정식으로 자리 잡은 배양 기법이었다.

광독립영양 미세번식(Photoautotrophic Micropropagation, PAM) 이라는 이름의 이 기술은, 배지에 설탕을 넣지 않고 배양체의 탄수화물 축적을 전적으로 광합성에 의존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정의된다. 이 방식을 처음 체계화한 일본의 코자이 도요키 연구팀은 1980년대 후반, 감자 배양체를 설탕 없는 배지에서 성공적으로 길러내며 이 개념을 실용화했다.

흥미로운 건 내가 오염 문제 때문에 우연히 발견한 이유와, 학계가 이 기법을 채택한 이유가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이다. 배지에 설탕이 없으면 미생물 번식이 억제되어 오염률이 크게 낮아진다는 것이, PAM 기법의 대표적인 장점 중 하나로 꼽힌다. 내가 실험실에서 “설탕을 줄이니 곰팡이가 덜 핀다”고 경험적으로 알아낸 것을, 학자들은 이미 논문과 책으로 정리해두고 있었던 것이다.

우연한 발견이 아니었다는 걸 나중에 알았을 때

처음 이 사실을 문헌으로 확인했을 때의 기분은 묘했다. 안도감과 약간의 아쉬움이 동시에 들었다. ‘내가 뭔가 대단한 걸 처음 발견한 줄 알았는데, 이미 있었구나’ 싶은 마음과, ‘내 손끝의 경험이 이론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구나’ 하는 확인의 기쁨이 함께였다.

돌이켜보면 나는 이론을 먼저 배우고 실험한 게 아니었다. 오염을 피하려고 설탕을 줄이다가, 결과적으로 식물 생리학의 원리 하나를 몸으로 부딪혀 알아낸 셈이다. 순서가 거꾸로였을 뿐, 도달한 지점은 같았다.

마무리 — 현장의 경험과 이론이 만나는 지점

과학은 논문과 교과서에서만 시작되지 않는다. 배양접시 앞에서 매일 오염된 배지를 갈아엎으며 “왜 자꾸 이러지” 하고 골머리를 앓던 그 시간들이, 결국 하나의 원리를 향해 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흔히 과학자의 고뇌를 머릿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라 생각한다. 하얀 가운을 입고 골똘히 생각에 잠긴 모습, 번뜩이는 아이디어 하나로 모든 게 풀리는 순간을 떠올린다. 하지만 실제 연구의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같은 배지를 수백 번 다시 만들고, 같은 절편을 수만 번 다시 심고, 같은 결과를 몇 날 며칠이고 다시 관찰하는 일의 반복이다. 이 지루하고 정직한 반복은, 어쩌면 용광로 앞에서 똑같은 동작을 수만 번 되풀이하며 하나의 제품을 완성해가는 노동자의 땀방울과 다르지 않다. 머리가 아니라 손끝과 두 발로 써 내려가는 노동인 것이다.

나 역시 그 반복 속에 있었다. 설탕의 양을 미리그램씩 줄여가며 배지를 다시 만들고, 오염된 배양체를 버리고, 또 새로 심고 지켜보는 일을 헤아릴 수 없이 되풀이했다. 그 수만번 반복의 끝에서 손에 잡힌 건 거창한 발견이 아니라, 아주 단순한 사실 하나였다. 식물은 스스로 밥을 지을 줄 안다는 것.

식물은 말이 없다. 다만 조건을 바꿔가며 지켜보는 사람에게, 아주 천천히 자기 방식을 보여줄 뿐이다. 그 방식을 알아채는 건 이론이 아니라, 매일 현미경 앞에 앉아 손을 움직이고 또 움직인 시간의 몫이다.


참고 문헌

  • Kozai T., Koyama Y., Watanabe I., Multiplication of potato plantlets in vitro with sugar free medium under high photosynthetic photon flux, 1988
  • Xiao Y., Niu G., Kozai T., Development and application of photoautotrophic micropropagation plant system, Plant Cell Tissue Organ Cult, 2011
  • Photoautotrophic (sugar-free medium) Micropropagation as a New Micropropagation and Transplant Production System, Springer, Kozai T., Afreen F., Zobayed S.M.A., 2005
  • Photoautotrophic micropropagation system (PAM): a novel approach deserving increased uptake for commercial plant production, Vegetos, Springer Nature,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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