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풀 이야기-세 갈래 잎에 숨은 우주

풀밭에 앉아 고개를 숙이면, 세상은 온통 세 갈래다. 토끼풀은 잎이 언제나 셋으로 갈라진다. 그래서 학명도 Trifolium — ‘셋(tri)’과 ‘잎(folium)’이 붙은 이름이다. 그런데 드물게, 정말 드물게 네 번째 잎이 하나 더 돋는다. 우리는 그 잎을 만나면 행운이 온다고 믿었고, 곱게 눌러 압화로 간직하며 오래도록 아꼈다.

네잎 클로버는 얼마나 귀할까. 2017년 유럽에서 약 570만 송이를 세어본 조사에 따르면 5,000개 중 하나꼴. 흔히 말하는 만 분의 일보다 오히려 두 배쯤 잘 나오는 셈이다. 네 번째 잎은 열성 유전자가 발현될 때, 그리고 서늘한 기온이나 비옥한 토양 같은 환경이 손을 보탤 때 태어난다. 우연 같지만 사실은 유전과 환경이 함께 써 내려간 작은 사건이다.

토끼풀(Trifolium repens)의 세갈래잎(초록)과 둥근 흰 꽃뭉치(흰색)를 붉은 천 위에 놓고 촬영한 전체 모습

네 잎에 담긴 이야기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네 장의 잎에 저마다 뜻을 붙였다. 흔히 첫 잎은 믿음, 둘째는 소망, 셋째는 사랑, 그리고 드물게 돋는 네 번째 잎이 바로 행운이라 했다. 나폴레옹이 전장에서 네잎 클로버를 주우려 몸을 숙인 순간 총알이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는 전설도 여기서 나왔다. 세 갈래 잎에도 이야기가 있다. 아일랜드에 기독교를 전한 성 파트리치오가 “잎은 셋이지만 풀은 하나”라며 삼위일체를 설명하는 데 토끼풀을 썼고, 그래서 세잎 클로버(shamrock)는 지금도 아일랜드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네 장으로 그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다섯 장, 여섯 장… 2023년 일본에서는 무려 63장의 잎을 가진 개체가 발견되어 기네스 기록에 올랐다. 잎이 많아질수록 확률은 아득해지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자연은 늘 예외를 준비해 둔다.

이름 속 이야기

토끼풀이라는 이름은 토끼가 즐겨 먹는 풀이라 붙었다. 종소명 repens는 ‘기어간다’는 뜻 — 실제로 이 풀은 줄기를 땅 위로 길게 뻗으며 마디마다 뿌리를 내려 카펫처럼 퍼져 나간다. 콩과(Fabaceae) 식물이라, 뿌리에는 공기 중 질소를 붙잡아 흙을 기름지게 하는 능력까지 숨어 있다. 밟혀도 다시 일어서고, 척박한 땅도 스스로 살찌우는 — 조용하지만 단단한 생명력이다.(학명·분류 정보 출처: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 > 식물자원 > 식물도감 > 이름으로찾기)

괭이밥이 아니에요 — 토끼풀 알아보기

재미있는 건, 우리가 흔히 ‘클로버’라며 떠올리는 하트 모양 잎이 사실은 토끼풀이 아니라 괭이밥(Oxalis)인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이모티콘 🍀조차 알고 보면 괭이밥에 가깝다. 둘은 닮았지만 분명히 다르다. 토끼풀의 작은 잎은 둥근 도란형이고 가운데 흰 V자 무늬가 있는 반면, 괭이밥의 잎은 또렷한 하트 모양에 무늬가 없다. 꽃도 다르다. 토끼풀은 흰 꽃송이가 둥글게 뭉쳐 피고, 괭이밥은 노란 꽃이 한두 송이씩 핀다. 자라는 자리도 갈린다. 토끼풀은 볕이 잘 드는 뜰을 좋아하고, 괭이밥은 그늘진 담벼락 틈에서도 잘 견딘다. 참고로 붉은 꽃이 피고 잎이 조금 길쭉한 붉은토끼풀은 같은 속의 친척으로, 예부터 허브로 쓰여 왔다.

꽃 한 송이가, 사실은 꽃 무리였다

흰 꽃을 가까이 들여다본 순간, 나는 잠시 멈췄다. 하나의 꽃이 아니었다. 수십 개의 작은 꽃송이가 둥글게 뭉쳐 이룬 무리, 곧 두상(頭狀) 꽃차례였다. 토끼풀 한 ‘송이’에는 낱꽃이 많게는 85개까지 모여 있다.

아이들과 관찰 수업을 하며 물었다. “이 수많은 꽃송이의 개수가, 모든 클로버에서 다 똑같을까?” 하나하나 세어보던 아이들의 답은 — 모두 달랐다. 어떤 머리는 예순, 어떤 머리는 여든. 자연은 규격품을 찍어내지 않았다. 관찰을 마친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자연은 정말 신기하고 아름다워요.”

그 말이 이 글의 전부인지도 모른다. 셈은 답을 주지 않았지만, 대신 경이를 주었으니까.

토끼풀 꽃뭉치 밑동을 확대해, 연둣빛 대롱 모양 낱꽃들(연두·흰색)이 한 점에서 방사상으로 모인 구조

마이크로로 해부한 낱꽃 한 개

낱꽃 하나를 떼어 조심스레 열어보았다. 콩과 특유의 나비 모양 꽃(접형화관)이 모습을 드러낸다. 위로 선 넓은 꽃잎(기판) 하나, 양옆으로 벌어진 날개꽃잎(익판) 둘, 그리고 그 안쪽에 배(舟) 모양으로 맞붙은 용골꽃잎(용골판) 둘. 이 용골판이야말로 비밀의 방이다. 암술과 수술을 품에 감춘 채, 벌이 내려앉아 눌러야만 살짝 열린다.

방문을 열자 노란 알갱이들이 쏟아진다. 수술의 꽃밥(anther)에서 터져 나온 꽃가루다. 그런데 꽃밥 다발 아래로, 반투명한 유백색 대롱들이 한데 묶여 굵은 기둥을 이루고 있었다. 콩과의 수술은 열 개인데, 아홉은 서로 붙어 이렇게 통을 이루고 단 하나만 홀로 떨어진다. 양체웅예(9+1)라 부르는 구조다. 그 통이 안쪽의 암술을 살포시 감싸 안는다.

토끼풀 낱꽃의 수술 확대. 반투명 유백색 수술대(흰색)가 다발로 묶여 통을 이루고, 그 위에 노란 꽃밥(노랑이)이 얹힌 양체웅예 9+1 구조

초록 기둥의 정체 — 다시, 해부

그런데 통 한가운데를 지나는 초록빛 기둥 하나가 자꾸 눈에 밟혔다. 노란 꽃밥들 사이에서 유독 연둣빛으로 도드라지는 그 애의 정체가 궁금했다.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 조금 무모하다 싶을 만큼 — 그 초록 부분만 따로 떼어내 다시 렌즈 아래 놓았다.

정체가 드러났다. 아래로 살짝 굽은 반투명한 대롱은 암술대, 그리고 그 끝의 초록빛 둥근 부분은 바로 암술머리(stigma)였다. 놀라운 건 그 다음이다. 암술머리 표면에 노란 꽃가루 알갱이들이 이미 내려앉아 붙어 있었다. 라벨을 확인하러 들어간 자리에서, 나는 수분(受粉)이 일어나는 바로 그 순간과 마주친 것이다. 콩과 특유의 굽은 암술대와 초록 암술머리 자그마한 낱꽃 하나가 품고 있던 완전한 한 살림이었다.

토끼풀 낱꽃을 고배율로 확대해 노란 꽃밥과 꽃가루 알갱이(노랑), 그 사이로 드러난 초록 암술(연두)
토끼풀에서 분리한 암술. 아래로 굽은 반투명 암술대(흰색) 끝에 초록빛 암술머리(연두)가 있고 표면에 노란 꽃가루(노랑)가 붙은 수분 장면

노랑과 연둣빛이 겹쳐 흐르던 그 작은 방을, 나는 렌즈의 네모난 창으로 오래 바라보았다.

풀밭이 베푸는 것들

토끼풀은 조용히 많은 것을 내어준다. 꽃에는 꿀이 가득해 벌들이 즐겨 찾는 밀원식물이고, 그렇게 모인 것이 우리가 아는 클로버 꿀이다. 잎과 줄기는 가축의 좋은 사료가 되며, 뿌리는 질소를 붙잡아 흙을 되살린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의 손끝에서 꽃반지와 꽃왕관이 되어, 여름 한나절의 놀이가 된다. 행운은 꼭 네 번째 잎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예부터 어린잎은 샐러드에 넣거나 말려 차로 우렸고, 말린 잎에서는 은은한 바닐라 비슷한 향이 난다고 전해진다. 다만 한 가지는 꼭 기억해 두자. 길가나 도시의 토끼풀은 함부로 먹지 않는 게 좋다. 자동차 매연이나 농약, 중금속이 잎에 쌓여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먹거리로서의 토끼풀은 깨끗한 환경에서 자란 것에 한한 이야기이고, 우리에게 토끼풀은 먹는 풀이라기보다 ‘들여다보는 풀’로 남겨 두는 편이 더 어울린다.

닫으며

셈으로 시작한 수업이 경이로 끝났다. 똑같은 꽃뭉치는 하나도 없었고, 그 불규칙함이야말로 자연의 서명이었다. 렌즈의 네모난 창 안에서, 흔한 풀 한 포기는 수십 개의 낱꽃과 감춰진 방과 노란 꽃가루의 우주가 되었다. 행운은 멀리 있지 않다. 고개를 숙여 자세히 들여다보는 그 순간,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 네모안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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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저작권은 Dr. KOSUNA 에게 있으므로 무단 복제 금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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