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시꽃의 꽃가루는 지름 100 µm를 넘습니다. 사람 머리카락 굵기와 맞먹지요. 그런데 이 큰 꽃가루의 표면은 온통 가시로 덮여 있습니다. 왜 이 꽃은 자기 꽃가루를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1. 접시꽃의 정체
접시꽃 Alcea rosea L. 아욱과(Malvaceae) 접시꽃속(Alcea) 이명: Althaea rosea (L.) Cav.
소아시아와 서아시아 일대가 원산으로 알려져 있고, 우리나라에는 오래전에 들어와 담장 곁이나 마당 한켠에서 흔히 자랍니다. 키는 1~2.5 m까지 곧게 서고, 줄기·잎·꽃받침 할 것 없이 온몸이 별 모양 털(성상모, stellate hair)로 덮여 있습니다. 염색체 수는 2n = 42.
잎은 둥글거나 심장 모양이며 3~7갈래로 얕게 갈라지고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있습니다. 아래쪽 잎이 가장 크고 위로 갈수록 작아져요.
꽃은 잎겨드랑이마다 붙어서 줄기를 따라 아래에서 위로 차례차례 올라갑니다. 전체 모양이 이삭처럼 보여 흔히 수상화서로 기재되지만, 엄밀히는 잎겨드랑이에 달린 꽃이 모여 이삭처럼 보이는 형태입니다.
꽃 구조는 이렇습니다.



2.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
접시꽃이라는 우리 이름은 꽃이 접시처럼 납작하게 펼쳐진 데서 왔다는 설명이 가장 널리 쓰입니다. 원반처럼 납작하게 여문 열매 모양에서 왔다고 보는 설명도 있고요. 어느 쪽이든 ‘납작함’이 이름의 핵심입니다.
속명 Alcea는 아욱 종류를 가리키던 그리스어 alkaia에서 왔고, 종소명 rosea는 ‘분홍빛의’라는 뜻입니다.
한자 이름은 촉규(蜀葵), 즉 ‘촉(사천) 지방의 아욱’입니다. 신라의 최치원이 남긴 한시 「촉규화(蜀葵花)」가 바로 이 꽃을 노래한 것으로, 거친 밭 한구석에 홀로 핀 접시꽃에 자신의 처지를 빗댄 작품입니다. 아무도 봐주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피어 있는 꽃 — 천 년 전 사람의 눈에도 이 꽃은 담장가의 꽃이었던 모양입니다.
3. 접시꽃 뒤에 숨은 별 — 부악(덧꽃받침)
꽃을 뒤집어 보면 초록색 별이 하나 붙어 있습니다.

이건 꽃받침이 아닙니다. 꽃받침(5갈래)은 그 안쪽에 따로 있고, 이 별 모양 구조는 꽃받침 바깥에 한 겹 더 있는 **부악(副萼, epicalyx)**입니다. 아욱과에서 이 부악의 갈래 수와 모양은 속을 가르는 중요한 형질이에요.
접시꽃의 부악은 보통 6~9갈래로 기재되며, 기부에서 서로 붙어 하나의 잔처럼 됩니다. 자료에 따라 6~7갈래로 좁게 잡기도 합니다. 이번에 촬영한 개체는 표본을 남기지 못해 실측 갈래 수를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다음 촬영 때 세어서 보완하겠습니다.
부악 표면을 확대하면 별 모양 털이 빽빽합니다.

이 사진은 오늘 세트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아끼는 컷입니다. 아직 색소도 만들지 않은 순백의 어린 꽃 원기가, 별 털로 무장한 초록 껍질 안에 웅크리고 있습니다. 접시꽃은 꽃이 되기 훨씬 전부터 이미 자기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4. 하나로 뭉친 수술 — 단체웅예
꽃을 세로로 갈랐습니다.

가운데 흰색 기둥이 보이시나요. 이것이 단체웅예(單體雄蕊, monadelphous stamen), 흔히 **수술통(staminal column)**이라 부르는 구조입니다.
보통 꽃은 수술이 여러 개 따로따로 서 있습니다. 그런데 아욱과는 다릅니다. 모든 수술의 화사(꽃실)가 아래쪽에서 하나의 통으로 융합되어, 그 통이 암술대를 감싸고 올라갑니다. 꽃밥은 이 통의 바깥면에 붙습니다.

아욱과 꽃이라면 무궁화든 목화든 접시꽃이든 모두 이 구조를 공유합니다. 담장가 접시꽃 한 송이를 갈라보면, 아욱과 전체를 관통하는 설계도가 그대로 드러나는 셈이지요.

씨방은 수술통 아래에 자리하고, 암술대는 통 속을 지나 위로 올라가 여러 갈래로 갈라집니다. 열매가 익으면 분과 20~40개가 원반 모양으로 둥글게 배열되고, 분과 하나에 종자가 하나씩 들어갑니다. 심피는 두 칸이지만 아래쪽 칸만 종자를 맺습니다.
5. 접시꽃 꽃가루는 왜 가시로 덮여 있을까
여기서부터가 오늘 글의 본론입니다.






동그란 구슬 하나하나가 접시꽃의 **화분립(꽃가루 한 알)**입니다. 표면을 자세히 보면 촘촘한 돌기가 보입니다. 이것이 **가시형 표면(echinate)**입니다.
접시꽃 화분은 다음과 같이 기재됩니다.
- 모양: 구형(spheroidal)
- 발아공: 6개 이상이 표면 전체에 흩어진 산공형(pantoporate)
- 표면: 가시형(echinate)
- 크기: 수화 상태에서 100 µm 이상
파키스탄에서 이루어진 계측 연구는 Alcea속 화분 지름을 125~162.5 µm(평균 143.2 ± 4.2 µm)로 보고했습니다.
이게 얼마나 큰 걸까요. 대부분의 꽃가루는 20~50 µm 범위에 들어갑니다. 접시꽃 화분은 그 서너 배입니다. 광학현미경 100배면 이미 형태가 잡히고, 조건이 좋으면 클립렌즈로도 표면 돌기가 잡힙니다. 실제로 위 사진들은 스마트폰과 200배 클립렌즈로 촬영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큰 화분은 **꽃가루기름(pollenkitt)**이라는 끈적한 지질층으로 덮여 있습니다.
6. 벌은 이 꽃가루를 가져가지 못한다
여기서 재미있는 연구가 있습니다.
Lunau 연구진은 인공 꽃을 이용한 실험에서, 뒤영벌이 접시꽃의 자연 상태 화분을 자기 다리의 화분바구니에 눌러 담지 못한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화분을 흔들어 가시를 구부러뜨리거나, 세척으로 꽃가루기름을 제거하자 — 그제서야 벌은 화분을 수거할 수 있었습니다. 가시와 꽃가루기름이 각각 독립적으로 수거를 방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후 2019년에 발표된 후속 연구는 여덟 종의 식물을 놓고 더 자연에 가까운 조건에서 이를 검증했습니다. 뒤영벌은 아욱과 세 종의 화분을 전혀 수거하지 못했고, 이들은 모두 지름 100~134 µm의 큰 화분이라는 공통점을 가졌습니다.
다만 여기서 정확하게 말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같은 연구는 화분 크기, 가시 길이, 가시 밀도 그 어느 것도 단독으로는 수거 불가능의 절대적 조건이 아니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즉 “가시가 길어서 벌이 못 가져간다”는 단순한 설명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큰 화분 + 가시 + 꽃가루기름이 함께 작용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각 요소의 기여도는 아직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방향은 분명합니다. 벌에게 화분은 두 가지입니다. 몸에 묻어 옮겨지는 것과 애벌레 먹이로 수거되는 것. 앞의 것은 꽃에게 이득이지만 뒤의 것은 손실입니다. 접시꽃의 큰 화분과 가시와 기름은, 벌을 쫓아내지 않으면서도 화분이 먹이로 회수되는 것은 어렵게 만드는 쪽으로 작동하고 있는 셈입니다.
가져가지는 못하되, 묻혀는 가라 — 사진 속 저 가시 하나하나가 그 조건을 걸고 있습니다.
7. 남겨둔 질문 — 겹꽃 개체에 관하여
이번에 촬영한 개체는 겹꽃(八重) 계통입니다.

원예에서 겹꽃은 대개 수술이 꽃잎으로 바뀌면서 만들어집니다. 이 과정은 작약 편에서 홑꽃과 나란히 비교해 자세히 다뤘습니다. 그런데 이 개체는 종단면에 정상적인 꽃밥과 화분이 뚜렷하게 남아 있었습니다(IMG_9302). 완전한 판상화가 아니라, 일부 수술만 꽃잎으로 전환된 상태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 겹꽃 개체의 화분 생산량은 홑꽃에 비해 어느 정도일까요. 수분 성공률은 달라질까요. 표본을 남기지 못해 이번에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다음 계절 촬영 때 홑꽃 개체와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보려 합니다.
기록해 두는 것만으로도 다음 관찰의 출발점이 됩니다.
8. 민간에서의 쓰임
접시꽃은 뿌리를 촉규근(蜀葵根), 꽃을 **촉규화(蜀葵花)**라 하여 민간에서 오래 이용해 왔습니다. 아욱과 식물 특유의 점액질 성분 때문에 부드럽게 감싸는 성질이 있다고 여겨졌지요. 어린잎을 나물로 먹기도 했습니다.
⚠️ 주의 위 내용은 민간 전승과 문헌 기록을 소개한 것으로, 효능을 보증하거나 치료 목적의 사용을 권하는 것이 아닙니다. 식물을 약용하거나 식용할 때는 반드시 정확한 동정이 선행되어야 하며, 건강상의 문제는 의료 전문가와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아욱과 식물의 꽃가루는 크고 표면이 거칠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수 있으니 민감하신 분은 접촉에 유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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