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시장에 가면 이상한 물건을 팝니다.
꽃잎이 하나도 없는 꽃.
주황빛으로 타오르는 원뿔만 댕강 잘려 다발로 묶여 있습니다. 이름표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호랑이 눈
정말로 눈 같습니다. 노려보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이걸 사서 꽃병에 꽂습니다.
그런데 이 물건의 정체를 알고 나면, 조금 놀라게 됩니다.
이름 다섯 개를 가진 꽃
이 식물의 학명은 Echinacea purpurea (L.) Moench 입니다. 우리말 이름은 하나가 아닙니다.
에키네시아 · 호랑이눈 · 드린국화 · 자주루드베키아 · 자주천인국
다섯 개나 되는 이름이 붙은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람마다 이 꽃의 다른 부분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 드린국화 — 자주색 꽃잎이 아래로 축 드리워지는(처지는) 모습을 본 이름
- 호랑이눈 — 그 꽃잎을 다 떼어내고 가운데 원뿔만 본 이름
- 자주루드베키아 — 240년 전 린네가 본 이름
- 에키네시아 — 이 꽃을 만져 본 사람이 붙인 이름
같은 꽃인데, 어디를 보았느냐에 따라 이름이 달라졌습니다.
린네는 눈으로 보았고, 뫼히는 손으로 만졌습니다
1753년, 칼 폰 린네는 이 꽃에 Rudbeckia purpurea — “자주색 루드베키아”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Rudbeckia는 린네가 웁살라의 스승 루드베크 부자를 기려 만든 속명입니다.)
1794년, 독일의 콘라트 뫼히가 이 꽃을 다시 봅니다. 그리고 루드베키아에서 떼어내 새 속을 만듭니다.
Echinacea — 그리스어 ἐχῖνος(echinos), 고슴도치에서 온 이름입니다.
왜 이 이름이었을까요.
중심부를 손끝으로 만져 보십시오. 찌릅니다.
부드러운 꽃송이일 거라 생각하고 손을 댔다가 흠칫 놀라게 됩니다. 뫼히는 그 감촉 하나로 속을 갈랐습니다. 학명이 곧 촉각의 기록인 셈입니다.
그래서 학명 뒤에는 지금도 (L.) Moench 라는 꼬리표가 붙습니다. “린네가 붙였으나, 뫼히가 옮겼다.” 우리가 이 꽃을 여전히 “자주루드베키아”라 부르는 것은, 1753년의 이름이 남긴 그림자입니다.
네모 안으로 — 호랑이의 눈을 해부하다

호랑이눈을 확대하면 이렇습니다. 붉은 침이 빽빽하게 곤두서 있습니다.
찌르는 정체가 이것입니다. 그런데 —
이 침들은 꽃이 아닙니다.
창과 별

이 사진에 두 가지 기관이 함께 찍혔습니다.
주황빛으로 길게 뻗은 창 — 이것이 인편(鱗片, palea) 입니다. 납작한 비늘 조각이 뻣뻣하게 굳어 뾰족한 침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창들 사이사이에 박힌, 자줏빛으로 벌어진 작은 별들 — 잘 보십시오.
이것이 꽃입니다.

한 송이만 더 가까이 들여다봅니다.
자줏빛 화관이 정확히 다섯 갈래로 벌어져 있습니다. 가운데는 뻥 뚫려 있고, 그 구멍 안쪽으로 갈색 원통 — 꽃밥통(anther tube) 이 들어앉아 있습니다.
꽃잎 다섯 장. 수술. 암술. 갖출 것을 다 갖춘, 완전한 꽃 한 송이입니다. 크기가 3mm도 안 될 뿐입니다.
이것을 관상화(管狀花, disc floret) 라고 합니다. 그리고 호랑이눈의 원뿔에는 이런 꽃이 수백 송이 박혀 있습니다.
호랑이눈은 하나의 꽃이 아닙니다. 수백 송이 꽃다발입니다.
침이 밖, 꽃이 안. 이 식물은 자기 꽃들 사이사이에 창을 꽂아두었습니다. 벌은 이 가시밭을 밟고 서서 꿀을 빨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엇을 산 것인가
여기서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꽃시장의 사람들은 자주색 꽃잎을 떼어내고 원뿔만 사갑니다. 꽃을 버리고 꽃 아닌 부분을 산다고 생각하면서.
정확히 반대입니다.
국화과의 두상화서는 두 종류의 꽃으로 이루어집니다.
- 설상화(舌狀花) — 바깥의 자주색 ‘꽃잎’. 하나하나가 독립된 꽃이지만, 이 식물에서는 씨를 맺지 못합니다. 곤충을 부르기 위한 간판입니다.
- 관상화(管狀花) — 원뿔에 박힌 자줏빛 작은 별들. 씨앗은 전부 여기서 만들어집니다.
즉 —
버려진 자주색 꽃잎은 씨를 못 맺는 간판이었고, 사간 원뿔은 진짜 꽃 수백 송이의 집합이었습니다.
꽃을 버리고 꽃 아닌 것을 샀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꽃 아닌 것을 버리고 진짜 꽃을 산 것입니다.
절화 시장은 이 사실을 몰랐을 겁니다. 그저 꽃잎이 축 처져서 모양이 안 나오니 잘라냈을 뿐이겠지요. 그런데 그 실용적인 판단이, 우연히 식물학적으로 정확했습니다.
아, 그리고 — 사람들이 잘라 버린 그 처진 꽃잎 때문에 이 식물에는 드린국화라는 또 다른 이름이 있습니다. 한 꽃에 두 이름이 붙었고, 각각 서로가 버린 부분을 가리킵니다.
창은 매끈하지 않았습니다

인편 하나를 마지막으로 들여다봅니다.
흰 갈고리 같은 돌기들이 빗살처럼 줄지어 나 있습니다. 강모(剛毛)입니다.
저 창은 그냥 매끈한 침이 아니었습니다. 날까지 톱니로 무장한 창이었습니다. 손끝을 찌른 것은 뾰족한 끝만이 아니었던 겁니다.
그리고 왼쪽 아래, 노란 꽃가루 한 알이 홀로 붙어 있습니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꽃밥통에서 한참 떨어진 매끈한 면 위에, 딱 한 알. 그런데 떨어지지 않습니다.
국화과의 꽃가루는 표면에 날카로운 가시돌기가 촘촘히 돋아 있어(echinate pollen), 매끄러운 표면에도 잘 달라붙습니다. 전자현미경으로 보면 성게처럼 생겼습니다.
꽃가루는 성게를 닮았고, 이 꽃의 이름은 성게(echinos)에서 왔습니다. 우연입니다. 그러나 좋은 우연입니다.
마지막 — 민들레를 닮았지만

꽃이 다 졌습니다. 남은 것은 이것입니다.
멀리서 보면 민들레 홀씨 같습니다. 하얗고, 둥글고, 보송해 보입니다. 후 불면 날아갈 것 같습니다.
만져보면 압니다. 찌릅니다.
억세고 꼿꼿합니다. 손바닥으로 감싸 쥐면 아픕니다. 갓털이 아니라, 꽃이 진 자리에 남은 창들이 그대로 굳어 곤두선 것입니다. 씨앗은 그 침 다발 밑동에 단단히 박혀 있습니다.
민들레는 갓털로 멀리 갑니다. 이 꽃은 아무데도 가지 않습니다. 대신 지킵니다.
씨앗머리는 겨울 내내 마른 줄기 끝에 그대로 붙어 서 있습니다. 눈을 맞으면서도, 새가 쪼려 들면 찌르면서. 떠나지 않고 버티는 쪽을 택한 씨앗입니다.
눈으로만 보면 민들레, 손으로 만지면 고슴도치.
남는 말
이 식물은 약초로도 오래 쓰여 왔습니다. 북아메리카 대평원의 원주민들이 뿌리를 상처와 통증에 사용했고, 지금도 전 세계에서 건강기능식품으로 팔립니다. 다만 그 효능에 대한 임상 연구 결과는 지금도 엇갈립니다. 아름다운 꽃이라는 사실과 검증된 약이라는 주장은 서로 다른 문제이고, 저는 그 둘을 섞지 않으려 합니다.
※ 이 글은 식물학적 관찰을 다룬 글이며 의학적 조언이 아닙니다. 어떤 식물이나 건강기능식품도 질병의 예방·치료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복용 전 의사 또는 약사와 상의하시고, 국화과 알레르기·자가면역질환·임신·수유 중이거나 다른 약을 복용 중이라면 반드시 전문가의 판단을 따르십시오.
이 꽃에는 이름이 다섯 개 있습니다.
드린국화라 부른 사람은 처진 꽃잎을 보았고, 호랑이눈이라 부른 사람은 그 꽃잎을 떼어냈습니다. 루드베키아라 부른 린네는 눈으로 보았고, 에키네시아라 부른 뫼히는 손으로 만졌습니다.
누구도 틀리지 않았습니다. 다만 아무도 전부를 보지는 못했습니다.
렌즈를 들이대고, 손끝을 대 보는 일. 제가 삼십 년 동안 해 온 일이 결국 그것이었구나 — 하고 이 꽃 앞에서 생각했습니다.
네모 안으로 한 걸음. 그리고 손끝으로 한 번 더.
함께 보면 좋은 식물 이야기
- [식물이야기 — 금계국, 길가에 쏟아진 금빛] ← 같은 국화과, 전혀 다른 답
- [식물이야기 — 아게라텀, 보랏빛 안개의 정체]
- [식물이야기 — 붓꽃, 무지개의 여신이 남긴 이름]
- [식물이야기 — 자주달개비, 세포를 보여주는 꽃]
- [식물이야기 — 토끼풀, 네 잎의 확률]
사진의 저작권은 Dr. KOSUNA 에게 있으므로 무단 복제 금지함.
참고 자료
- Linnaeus, C. (1753). Species Plantarum, vol. 2, p. 907 — Rudbeckia purpurea L. 최초 명명
- Moench, C. (1794). Methodus Plantas Horti Botanici et Agri Marburgensis, p. 591 — Echinacea 속 신설
- International Plant Names Index (IPNI) — Echinacea purpurea (L.) Moench 명명 이력 (ipni.org)
- 국립수목원, 「국가표준식물목록」 — 자주천인국 국명·학명 대조 (kpni.nature.go.kr)
- 김혜정, 화훼장식용 꽃식물 도감. 169